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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된 ‘낭만닥터 김사부’ 최종회에서 ‘포터블 기사’라는 호칭 사용으로 방사선사분들의 기분이 상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언짢았을까요? 혹자는 ‘의료기사(醫療技士)법에서 정의된 명칭을 따라 기사라고 말한 것이 무슨 잘못이냐? 기사도 전문직이다’라고 반문합니다. 전혀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호칭에 대해서 민감할까요?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기사(技士)’란 ‘운전사를 높여 이르는 말’ 또는 ‘국가 기술 자격 등급의 하나로써 공학적 기술 이론 지식을 가지고 기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법에 의거한 기술 자격 검정 시험에 합격하여야 한 자’로 지칭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방사선사의 시작은 문헌에 의해 1913년 세브란스의학교 부속병원 외과의 강문집 교수를 도와 엑스선검사를 전담한 이일선 선생님으로 추정됩니다. 당시의 엑스선장치는 초보적 기술로 Gas관 형태의 기계식 정류장치여서 전기기술자들에 의해서 주로 다뤄졌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당시는 일제강점기로 일본의 기술중시 문화로 ‘기사’라는 호칭은 존중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인 1920년 미국 방사선사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Radiological Technicians, AART)가 시카고에서 창립되었습니다. 당시 엑스선을 이용한 의료검사장비는 단순일반촬영장비와 투시촬영장비만 있었기 때문에 방사선사의 직무는 지금보다 매우 단순했기 때문에 기사의 영문 표현인 ‘Technician’이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독립 이후 6·25 전쟁으로 황폐화되어 법제도를 일제강점기때 사용된 일본식으로 받아들여 1963년 ‘의료보조원법’이 제정되었으며, ‘엑스선사’라는 명칭으로 법적 지위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1965년 7월 31일 ‘대한엑스선사협회’ 창립총회가 열려 지금의 ‘대한방사선사협회’의 모태가 됩니다. 그 후 1973년 2월 ‘의료보조원법’이 ‘의료기사법’으로 바뀌고 ‘엑스선사’도 ‘방사선사’로 명칭이 바뀝니다. 미국도 1964년도에 협회 명칭을 ‘American Society of Radiologic Technologists(ASRT)’으로 변경하여 방사선사들이 ‘Technologist’ 지위를 가지게 됩니다. 참고로 일본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챕터 시스템(chapter system)을 채택하여 복수 면허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CT 방사선사는 ‘CT Technologist’, MR 방사선사는 ‘MR Technologist’라고 표기하며, 호칭은 줄여서 ‘CT Tech.’, ‘MR Tech.’이라고 부릅니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에서도 방사선사들을 ‘Technician’이라고 부르면 우리에게 기사라고 호칭한 것과 비슷하게 매우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CT Tech.’과 ‘MR Tech.’에서 ‘Tech’은 ‘Technician’이 아닌 Technologist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Technician’과 ‘Technologist’은 무슨 차이일까요? 우리는 이 차이에서 왜 ‘방사선사’를 ‘기사’로 호칭하면 안 되는지의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서두에서 언급했지만 기사 즉 ‘Technician’은 공학적 기술 이론 지식을 가지고 기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중심이 아닌 기술중심으로 주어진 기술에 숙련된 사람을 말합니다. 하지만, ‘Technologist’는 엔지니어와 유사한 개념으로 광의의 전문기술자로 문제해결 능력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직무를 수행하는 자입니다. 의료분야에서의 ‘Technologist’는 주어진 검사의뢰만을 숙련된 기술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최소한 선량으로 정확한 검사와 안전하고 정밀한 치료를 능동적으로 수행하는 자입니다. 만약, 의사 처방에만 의존하여 검사나 치료 당시의 환자상태를 무시하고 직무를 수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Technician’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의료현장에서 방사선사들의 친절함과 따뜻한 위로의 말로 진행되는 검사 및 치료를 더 요구하고 있고, 방사선사들은 이에 부합하도록 노력하며 임상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임상현장에 있는 동료로부터 ‘기사’라는 호칭을 아무리 정중히 들어도 그 의미가 다르게 때문에 우리는 자존감에 상처를 받습니다.

과거 간호사들을 법령에 의해 간호원이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고, 간호원이라고 부르면 그분들도 역시 기분이 상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간호가 단순히 진료의 보조영역이 아닌 독립된 간호영역의 주체자로서 일하고 있는데 업무의 영역을 좁혀서 호칭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환자를 대상으로 검사업무를 수행하는 보건의료인으로서 방사선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기계를 운용하는 기사로 취급하기 때문에 속상한 겁니다. 또 환자분에게 검사자로서 신뢰를 주지 못하는 호칭이기도 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첫째, 조속하게 ‘의료기사법’ 명칭을 ‘보건의료인법’으로 개정하여 일제 잔재의 구시대적인 용어를 탈피하고 국제적 인식수준에 맞추어야 합니다. 특히, 제4차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 로봇기술, 빅데이터 등 의료방사선영역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하여 장비를 운영하는 노동의 강도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줄어드는 노동의 방향성은 환자 간호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의료기사법’은 근본적으로 직무 범위를 제한하고 있어 간호사의 직역과 충돌을 유도하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미래 의료를 대비하기 위한 의료기사법 개정이 시급합니다. 둘째, 방사선사들의 자질 향상입니다. 국민보건의 최일선에 있는 직업적 소명감으로 단순히 의료 기계를 운영 및 촬영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고 지속적인 공부로 방사선 검사 및 치료 전문가로 발전해 가야 합니다. 나부터 노력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전문가가 될 때, 호칭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청주대학교 방사선학과에서 수행하고 있는 환자안전관리 및 이동형엑스선장비 실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