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모기간: 10월 12일(월) ~ 11월 13일(금)
배경 음악이 재생 중입니다.
조정훈 아주대학교병원
자전거에 조금 많이 진심인 어느 방사선사의 이야기

병원에서는 방사선사,
퇴근 후에는 또 다른 내가 된다.
나의 하루는 달력의 평일과 주말로 나뉘지 않는다. 병원에서 교대 근무를 하는 방사선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쉬는 주말이 나에게는 근무일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평일 낮이 나만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병원에서는 MRI 파트에서 환자들과 마주하고 있다.
병원에서의 하루는 늘 긴장과 집중의 연속이다. 환자를 확인하고 검사를 준비하며, 정확한 영상을 얻기 위해 장비와 환자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핀다. 같은 검사라 하더라도 환자의 상태와 상황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때그때 판단해야 할 것도 많다. 무엇보다 환자를 직접 마주하는 직업인 만큼 환자 안전과 정확한 검사, 그리고 책임감을 놓칠 수 없다.
특히 검사 자체에 대한 긴장이나 낯선 환경 때문에 불안해하시는 환자들을 자주 마주하다 보니, 환자가 안심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배려하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근무가 끝나면, 또는 남들보다 조금 다른 시간에 찾아온 휴무가 시작되면 나에게는 또 다른 시간이 열린다.
근무복을 벗고 사이클 저지로 갈아입고 헬멧을 쓰는 순간이다.
교대 근무를 하다 보니 남들이 쉬는 주말에 항상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근무표를 확인하며 라이딩할 수 있는 날을 찾고, 때로는 평일 한낮의 한적한 도로를 달린다. 일정이 허락하면 자전거를 챙겨 조금 더 먼 곳으로 떠나 달리기도 한다. 기회가 된다면 해외로 떠나 낯선 나라에서 번호표를 달고 자전거 대회의 출발선에 서 있기도 했다.
물론 자전거 선수는 아니다. 그저 자전거에 조금 많이 진심인 방사선사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자전거에 진심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로드 자전거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직장 동료의 권유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타기 시작했지만, 막상 처음 자전거에 올라 동료를 따라가 보니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같은 길을 달리고 있는데도 점점 거리가 벌어졌고,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찰 때가 많았다.
처음에는 ‘자전거가 이렇게 힘든 운동이었나’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힘들다고 그만두고 싶기보다는, 다음에는 조금 더 잘 따라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꾸준히 안장 위에 오르고, 조금 더 먼 거리를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단순히 동료를 따라가는 것을 넘어 스스로 자전거 그 자체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따라가기조차 힘들었던 자전거가, 그렇게 조금씩 내 일상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는 횟수가 늘면서 자연스럽게 달리는 거리도 길어졌다. 처음에는 탄천을 따라 한강까지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꽤 큰 도전처럼 느껴졌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지도에서 더 먼 목적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자전거로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 직접 가보고 싶어졌고, 무사히 돌아오고 나면 다음에는 조금 더 멀리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단순히 멀리 가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더 잘, 그리고 안전하게 탈 수 있을까’가 궁금해졌다. 자세와 페달링, 코너링, 여러 사람과 함께 달릴 때의 주행 방법과 같은, ‘로드 사이클’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이클 아카데미(올공 사이클 아카데미)에 찾아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취미로 타는 자전거를 굳이 배워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막상 교육을 받아보니 자전거를 탈 줄 아는 것과 제대로 탈 줄 아는 것은 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자전거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취미에서, 배우고 목표를 세우며 즐기는 취미로 조금씩 바뀌어 갔다. 제대로 타는 법을 배우고 나니 자연스럽게 더 큰 도전에 눈이 갔다. 가까운 자전거길을 넘어 더 긴 거리를 달려보고 싶었고, 그렇게 나의 자전거 생활은 국토종주와 ‘그란폰도’라고 불리는 대회 라이딩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더 멀리, 더 새로운 길로
자전거를 타는 시간이 쌓일수록 자연스럽게 더 긴 거리와 새로운 길에 대한 욕심도 생겼다.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라이딩으로는 일출과 함께 동해 정동진에서 출발해서 일몰 전까지 서해 정서진 도착을 목표로 달리는 장거리 라이딩에 도전했었다. 긴 시간 페달을 밟으며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결국 목표한 시간 내에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의 성취감은 지금도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국내를 넘어 해외의 길도 달려보기 시작했다. 가까운 일본으로 내 자전거를 챙겨, 해발 3,000m가 넘는 후지산, 탁 트인 절경을 볼 수 있는 구마모토의 아소산을 오르는 등 익숙한 자전거길과는 다른 풍경과 도로를 경험하기도 하였다. 자전거가 단순한 운동을 넘어 여행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자동차로 이동했다면 금세 지나쳤을 길과 마을을 천천히 달리고, 그곳의 바람과 경사까지 직접 느끼는 경험은 일반적인 여행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렇게 자전거는 나를 더 먼 곳으로 데려가는 취미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다음에는 또 어떤 길을 달려볼지 기대하게 만들었다.


함께 달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 자전거 생활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아내다.
자전거는 이제 나 혼자만의 취미가 아니라 우리 부부가 함께 즐기는 취미가 되었다. 휴무가 겹치는 날이면 자연스럽게 날씨를 확인하고, 어디를 달릴지 코스를 찾아본다. 가까운 길을 가볍게 달리는 날도 있고, 하루를 온전히 라이딩에 쓰기도 한다.
같은 취미를 가진다고 해서 항상 같은 속도로 달리는 것은 아니다. 서로 잘하는 구간도 다르고 컨디션이 다른 날도 있다. 업힐을 오를 때면 먼저 올라간 사람이 기다려 주기도 하고, 힘든 날에는 서로의 속도에 맞춰 달리기도 한다. 때로는 코스나 페이스를 두고 의견이 다를 때도 있지만, 라이딩이 끝난 뒤 그날 있었던 일을 가장 오래 이야기하는 사람도 결국 서로다.
자전거를 함께 타면서 여행의 방식도 조금 달라졌다. 여행지를 정하면 자연스럽게 주변에 달릴 만한 길이 있는지 찾아보게 되었고, 아내가 참가하는 해외 대회를 계기로 함께 자전거를 챙겨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자전거 덕분에 평소라면 가보지 않았을 곳을 찾고, 새로운 풍경을 함께 경험하는 일이 우리 부부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되었다.
처음에는 직장 동료의 권유로 시작한 자전거였다. 따라가는 것조차 벅찼던 때를 지나 조금 더 잘 타고 싶어 배우기 시작했고, 대회와 같은 긴 거리를 달리고, 해외의 낯선 길까지 찾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의 많은 순간을 이제는 아내와 함께 하고 있다.
병원에서 방사선사로 일하는 모습과 자전거를 타며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모습은 겉으로 보면 꽤 다른 삶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둘 다 소중한 일상이다.
방사선사라는 직업이 책임감과 보람을 준다면, 자전거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새로운 목표와 활력을 준다. 근무복을 입고 환자를 마주하는 시간도, 헬멧을 쓰고 아내와 함께 페달을 밟는 시간도 결국 나를 이루는 하나의 삶이다.
병원에서의 반복되는 일상으로 지쳐갈 때도 있지만, 자전거 위에서는 반복되는 페달링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어쩌면 ‘이중생활’이라고 부르기에는 두 삶이 너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방사선사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새로운 길을 찾아 계속 달리고 싶다. 그 곁에 아내가 늘 함께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