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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 새옹지마’라는 속담 속의 새옹지마는 중국 전한 시절 회남왕 유안이 편찬한 철학서 ‘회남자’의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새옹지마(塞翁之馬)가 고사성어로서 지금까지 회자하고 있다. 사람의 운수는 변화가 많아서 예측하기가 어렵다. 늘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는 일들을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 때,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영원한 강자도 끝없는 패자도 없음이 사람이 행하는 일이 아닐까? 삶에 있어 모든 것이 그러하듯 긍정의 기능과 부정의 기능은 ‘누가 그걸 사용하느냐에 달렸다.’라는 말에 새삼 느낌이 진하게 와닿는 경험을 했다고 할까?

여행도 할 겸 집안일로 미국에 사는 딸과 함께 지냈다. 약 6개월이었지만, 중간에 귀국해서 보낸 날까지로 보면, 1월 말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예년과 비교해 눈이 자주 내린다고 했다. 그때부터 8월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까지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특별한 날들이었다. 

5살 되는 손자의 재능 수업 시간을 따라다니면서 미술 선생님과 몇 번의 대화를 주고받게 되었다. 묻는 말에 평소 느낌을 말했더니 스케치를 같이해 보자고 했다. 선뜻 나서지 못하고 망설였지만,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쉬운 요령을 설명해 준 덕에 드로잉 권유에 따랐다. 스케치북을 펼치고 바라보니 금방 어떤 말을 들었는지 눈앞이 하얘진다.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을 보면서 그리는 것이 모작이다. 나의 시작이다. 고민할 것이 없다. 보이는 대로 그대로 따라 그리면 되게 유도해서 연필을 잡았지만, 맘대로 쉽게 되지 않았다. 이렇게 공개된 상황에서 어설프게 그려진 그림을 보여주자니 창피한 기분도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이 몇 군데 집중적으로 수정하면서 요령을 말해주었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고 느껴졌다. 그렇지만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중학교 미술 시간에 선생님 따라 그렸던 몇 번의 그림을 그려본 것이 전부다. 수정해 주는 선생님의 손놀림에 정신이 팔렸다. 너무 자연스럽다. 연필에 전달되는 노련미의 느낌을 눈앞에서 보여주면서 설명해 준다. 오래전에 읽은 책 속의 그림에 관한 내용도 조금씩 떠오른다. 

다시 연필을 잡고 내가 그린 그림을 보았다. 조금 전보다는 다른 느낌이다. 이렇게 머뭇거리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생각 같아서는 맘먹은 대로 될 때까지 그려보고 싶었지만, 정해진 시간이라서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숙제로 받아서 집으로 왔다. 저녁을 먹고 딸이 용기를 내게 해 준다. 생각보다 쉽게 따라 했다고 얼러준다. 이제 손자도 딸도 연필을 잡고 각자 그림을 그렸다. 저녁밥을 먹고 난 식탁은 미술 시간이 시작되었다.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가족이 함께 떠드는 즐거운 공유의 시간이 되었다. 장난감을 마구 쏟아 넣은 상자 속 밑에 깔려 있던 색연필까지 총동원되었다. 이제 연필부터 크레용까지 새로운 상자에 곱게 담기는 정도로 발전하였다. 덕분에 흩어져 있던 필기구들이 한데 모이는 일거양득의 효과까지 말이다. 둘째 시간부터는 생각을 표현하기도 수월해졌다. 읽었던 책 속에서 그림에 대한 효과와 화가의 기법 등 간접적인 경험의 기회를 가졌던 것은 큰 힘이 되었다.

미술 작품이란 인간의 열정을 통해
자연을 관찰하는 것이다.

숙제 검사를 받았다. 미흡한 부분에 대한 지적도 받았지만 처음 해보는 수준으로는 잘하는 것이라고 에둘러 칭찬을 곁들여 준다. 덕분에 쑥스러웠던 기분도 삭아 들었다. 빛의 방향 그림자의 표현과 명암 처리 시 엣지와 중심부 빛의 효과를 직접 느끼고 표현하는 것을 반복하였다. 원형과 사각형의 입체화 느낌을 살려 나갔다. 연속되는 선과 꺾이는 선의 조화 표현에 집중하였다. 드로잉하는 마음은 벌써 피카소가 되었지만, 이 어설픈 상태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둘째 시간도 이렇게 지났다. 숙제를 주면서 파스텔을 재료로 내주었다. 이번에는 스케치한 후에 파스텔로 색깔을 표현해 보라고 한다. 

일주일 중에 6일을 파스텔로 낙서 같은 그림을 그렸다. 주변이 파스텔 분말 때문에 난장판이다. 색깔의 조화를 만들기 위해서 손자의 색칠 공부하는 밑그림을 이용했다. 크레용을 같이 칠하면서 느낌을 가져보았다. 파스텔 색조라고 색감을 표현했던 게 이런 느낌이라는 것도 새삼 실감한 순간이다. 이번에는 색연필로 채색하는 방법을 시도해 봤다. 색연필은 파스텔처럼 분말을 만들지 않아 뒤처리하기가 쉬웠지만, 밑그림을 지우기가 쉽지 않았다. 경험 없이 연필로 스케치한 어려움을 감지하고 연한 색의 색연필 밑그림을 그리는 것부터 한 번 더 시도했다. 

이렇게 시작한 그림의 경험은 내게는 아주 흥미로운 세계가 되었다. 우선 지루한 타지의 일상생활이 바뀌었다. 틈나는 대로 다양한 미술 재료들에 대해 찾게 되었고 주말에 일정을 잡아 하버드아트뮤지엄도 관람하면서 그림에 대한 감각을 대화의 주제로 하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성지 같은 락포트까지 탐방하면서 호기심을 키웠다. 내 모습도 그려보았다. 내가 나를 그려봤지만 나 같지 않다. 유명한 화가들이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 것을 보고 관찰력과 집중력을 새삼 부러워하게 되었다. 그림은 자기만의 시선으로 보고 느낌을 찾아 표현하는 것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사물들이 나름대로 멋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평소의 시각을 넘어,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하는 능력의 묘미를 느낀다. 

이제 무심코 지나치는 차창으로 보이는 것들이 한평생을 살아온 주변과 이곳 미국의 작은 부분이지만 다른 느낌을 찾게 한다. 여행의 즐거움에 그림이 주는 감성까지 보고 생각하고 표현해 보는 즐거움이 새록새록 많아진다. 나무도 보고 숲도 보는 시선, 멀게 보이는 것과 눈앞에 보이는 것의 다양한 기쁨이 커진다. 그림을 모르고 편하게 봐 넘기던 차원이 다르게 보인다. 그림으로 그리려면 어떤 게 중심이 되고 어떻게 나타내 보일 것인지, 그 차원을 다르게 할 방안도 모색하게 된다. 또 보이는 그 내막에 대해 찾게 되고 서로 같거나 다른 것에 대한 역사도 찾아보게 된다. 한 장의 그림이 완성되면 남의 시선이 아닌 나 자신만의 느낌으로 즐기게 된다. 또 과정을 되짚어 보는 시간도 즐기게 된다. 내가 존재하는 주변의 것들에 대한 애정도 깊어진다. “미술 작품이란 인간의 열정을 통해 자연을 관찰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대문호 에밀 졸라의 말이다. 이 말속엔 긍정이 되는 부분도 부정하고 싶은 부분도 있다. 그러나 문맥이 주는 뉘앙스를 생각하면 미술이 내게 가까이 오게 된 것이 좋다. 나이 듦이라는 것은 세월이 익어간다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본의 아니게 미술 유학 여행을 즐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