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모기간: 10월 2일 (수) ~ 11월 18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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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준 (전, 을지대학교 교수)

증가하는 방사선 피폭과 우리의 사명
2024년 질병관리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의료방사선 검사가 8건에 달하며, 총 피폭선량은 3.13mSv에 이릅니다. 전년 대비 3.5% 증가한 수치입니다. CT 검사만으로도 전체 피폭선량의 67%를 차지하고 있다는 현실 앞에서, 우리 방사선사들의 책임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놀라운 기술 혁신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개발한 FLASH 양성자치료 기술은 1초 미만의 초고속으로 고선량을 전달하여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면서도 정상조직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혁명적 치료법입니다. 휴대용 X-ray 장비의 병원 외부 사용 허가는 응급상황과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서의 진단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40여 년간 이 분야를 지켜본 한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기술을 다루는 사람인가, 아니면 기술 너머 인간을 치유하는 사람인가?
1단계: ALARA에서 FLASH까지 – 패러다임의 진화
방사선 안전의 철학적 기반
ALARA(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는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한 낮게”라는 뜻으로, 1977년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제시한 방사선 방호의 핵심 원칙입니다. 시간(Time), 거리(Distance), 차폐(Shielding)라는 세 가지 기본 요소를 통해 방사선 피폭을 최소화하면서도 의학적 이득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제가 1979년 이 분야에 발을 디뎠을 때만 해도, 방사선사는 주로 “피폭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만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현대 의료방사선 방호의 일반 원칙은 정당성(Justification), 최적화(Optimization), 선량한계(Dose Limitation)라는 세 키워드로 요약됩니다. 단순히 선량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검사의 의학적 타당성을 먼저 평가하고, 진단 목적에 부합하는 최적의 영상 품질을 달성하면서도 선량을 최소화하는 통합적 사고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FLASH 기술이 가져온 패러다임 전환
FLASH 방사선치료는 기존 임상 방사선치료보다 몇 배 높은 초고선량률(40Gy/s 이상)로 방사선을 전달하는 기술입니다. 이 기술은 정상조직 독성을 줄이면서도 종양 제어 효과를 유지하는 ‘FLASH 효과’를 유발하여, 암 치료의 미래를 바꿀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시내티 대학의 FAST-01 임상시험은 인간 대상 최초의 FLASH 양성자치료 임상연구로서, 골전이 환자 10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어떻게 하면 환자에게 더 나은 치료를 제공할 수 있을까”라는 본질적 질문에서 시작된 혁신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혁신이 단순히 공학적 발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자 하는 인간적 동기, 더 나은 치료 결과를 위한 의학적 비전이 먼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2단계: AI 시대의 방사선사 – 기술과 인간성의 조화
AI가 바꾸는 방사선과 풍경
인공지능의 의료영상 분야 도입으로 방사선과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AI는 영상 획득 과정에서 스캔 절차를 개선하고, 영상 품질을 최적화하며, MRI, CT, PET 등 다양한 모달리티에서 정교한 영상 재구성을 가능하게 합니다.
방사선사들의 AI에 대한 반응은 복합적입니다. 미국방사선기술협회(ASRT)의 조사에 따르면, 약 20,000명의 의료영상 및 방사선치료 전문가들은 대체로 AI를 유익한 발전으로 보고 있으며, 18-24세 연령군의 거의 40%는 AI가 자신들의 역할 범위를 확장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에 대한 우려나 기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관점으로 이 변화를 바라보느냐입니다. AI는 방사선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업무를 자동화함으로써 방사선사들이 더 중요한 일, 즉 환자와의 관계 형성과 동료들과의 협력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줍니다.
기술 파트너로서의 AI 활용
제가 핵의학 분야에서 일할 때 경험한 일입니다. 복잡한 SPECT 영상을 분석하면서 미세한 병변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몇 시간씩 집중해야 했습니다. 만약 그때 AI가 있었다면, 초기 스크리닝과 관심영역 표시는 AI가 담당하고, 저는 그 결과를 임상적 맥락에서 해석하고 환자에게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목표는 전문 방사선사와 투명하고 설명 가능한 AI 시스템의 파트너십”이라고 강조합니다. “함께 있을 때 둘 중 어느 하나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3단계: 다면적 전문성 구축 – 통합적 사고의 필요성
모든 모달리티를 아우르는 방사선사
현대의 방사선사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진단영상의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어야 합니다. MRI의 자기공명 원리를 이해하면서도, CT의 X선 물리학을 꿰뚫고, 초음파의 음향학적 특성을 파악하는 동시에 PET의 핵의학적 지식까지 갖춰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각의 기술을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간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통합적 사고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환자의 병변을 CT에서는 저음영으로, MRI에서는 T2 고신호로, PET에서는 고집적으로 보았을 때, 이 세 가지 정보를 종합해서 어떤 의미인지 해석할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방사선 방호와 화질 최적화의 균형
현재 우리나라의 연간 의료방사선 검사 건수가 4억 건을 넘어서는 상황에서, CT 한 번의 평균 피폭선량이 10-15mSv에 달한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흉부 X-ray의 0.2-0.34mSv와 비교하면 50배 가까운 차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방사선사의 역할은 단순히 “의사가 처방한 검사를 시행하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환자의 임상 상황을 고려해서 적절한 프로토콜을 선택하고, 진단에 필요한 화질을 확보하면서도 피폭선량을 최소화하는 최적화 작업이 필요합니다.
4단계: 인문학적 소양의 중요성 – 기술 너머의 인간 이해
환자 중심의 사고로 전환
제가 2017년에 『고전명전』을 출간한 이유는, 기술만으로는 진정한 의료인이 될 수 없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고전을 통해 인간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성찰하면서, 환자를 단순한 ‘검사 대상’이 아닌 ‘치유받아야 할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료였던 지인의 임상에서의 일화를 들었습니다. 한번은 70대 할머니가 CT 검사를 받으러 오셨는데, 극도로 불안해하시더군요. “암에 걸린 건 아닐까요? 방사선 때문에 더 아프게 되는 건 아닐까요?”라고 연거푸 물어보시는 그분께, 저는 단순히 “걱정하지 마세요”가 아니라, 할머니의 가족력과 증상을 자세히 듣고, 검사의 목적과 예상되는 결과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후에야 할머니는 안심하고 검사를 받으실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소통의 기술로서의 인문학
의료현장에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해야 합니다. 의사에게는 정확한 의학적 정보를, 간호사에게는 간호업무와 연계된 설명을, 환자에게는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같은 내용을 전달해야 합니다.
또한 문화적 배경이 다른 환자들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종교적 신념으로 특정 검사를 거부하는 환자, 언어적 장벽으로 소통이 어려운 외국인 환자, 문화적 차이로 인해 신체 노출을 꺼리는 환자들… 이런 다양한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문학적 소양의 힘입니다.
5단계: 창의적 혁신과 글로벌 리더십
퍼스트 무버로서의 자세
앞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진정한 퍼스트 무버는 단지 기술을 먼저 개발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라는 문명적 비전을 먼저 품고, 그 비전을 실현할 기술을 창조하는 사람”입니다.
방사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FLASH 치료 기술의 개발 과정을 보면, 단순히 “선량률을 높이자”는 기술적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암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면서 정상조직 손상은 최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휴대용 X-ray의 철학적 의미
최근 허가된 10kg 이하 휴대용 X-ray 장비의 병원 외부 사용은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닙니다.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서도 양질의 진단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료 형평성의 철학이 반영된 것입니다. 물론 안전관리 차원에 대한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방사선사가 되려면, 기술적 역량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술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국제적 협력의 중요성
삼성서울병원이 FLASH 기술 개발을 위해 2024년부터 일본 스미토모와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처럼, 현대 의료기술 발전은 국경을 넘나드는 협력을 통해 이뤄집니다.
여러분도 단순히 국내 기술을 익히는 데 그치지 말고, 글로벌 트렌드를 파악하고 국제적 협력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영어 실력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요합니다.
6단계: 시대적 사명감과 전문직업인의 자긍심
생명을 지키는 최전선에서의 역할
미국에서 활동하는 방사선사가 연간 평균 3.2mSv의 X-ray 피폭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어떤 양의 방사선 피폭도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방사선사는 자신의 안전을 지키면서도 환자에게 최고의 진단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이중적 책임을 집니다.
하지만 이것이 부담이 아니라 자긍심의 근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생명을 구하는 일에 참여하는 의료진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들의 흉부 CT를 촬영해 조기 진단에 기여했듯이, 방사선사의 전문성이 없었다면 수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미래 세대 교육의 책임
의과대학생들의 50%가 AI 때문에 방사선과 전공을 꺼린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방사선과 전문가들은 AI가 가져올 정밀의료, 워크플로우 효율성, 의사결정 지원 등의 발전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의 격차를 줄이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후배들에게 단순히 기계 조작법만 가르치지 말고, 환자를 대하는 마음가짐, 의료진으로서의 사명감, 끊임없는 학습의 중요성을 함께 전해주어야 합니다.
기술과 인문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지금까지의 여정을 돌이켜보면, 기술의 발전만으로는 진정한 의료혁신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최첨단 FLASH 치료 기술도, 정교한 AI 진단 시스템도, 결국은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출발한 것들입니다.
앞으로 10년 내에 방사선과 AI 분야에서 일어날 변화들 – AI 기반 가상 어시스턴트의 등장, 개인맞춤형 진단 알고리즘의 발전, 실시간 영상 분석 시스템의 구축 등 – 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현실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하되, 그 기술이 진정으로 인간을 위해 쓰이도록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 바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방사선사 말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마주하게 될 세상은 제가 경험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할 것입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픈 사람을 치유하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려는 열정, 그리고 동료들과 협력해서 더 나은 의료를 만들어가겠다는 사명감입니다.
기술과 인문학이 만나는 그 지점에서, 여러분만의 독창적인 길을 만들어가시기 바랍니다. 그 길 위에서 만날 모든 환자들이 여러분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고, 여러분 역시 이 숭고한 일에서 깊은 보람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방사선 피폭이 증가하는 시대이지만, 그만큼 우리의 역할과 책임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를 부담으로 여기지 말고,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최전선에서 일할 수 있는 특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여러분이 바로 기술과 휴머니즘을 조화시킬 수 있는 21세기형 의료인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