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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CIRSE 학회 (스페인, 바르셀로나)

병원에서의 방사선사 생활은 길지 않았다. 면허 취득 후 대부분의 동기들이 그랬던 것처럼 남양주 소재의 한 종합병원 영상의학과에서 흰 가운을 입고 정확히 만 1년을 근무했다. 일반촬영, CT, MRI, C-arm, 야간 당직까지 짧은 기간 많은 것을 경험했다. 너무 잦은 로테이션 근무로 나 자신의 전문성과 만족감이 떨어진다고 느낄 무렵, 13개월 차에 5만원 인상된 급여에서 회의감을 느끼고 의료 영업직에 관심을 돌려 주변과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기 시작했다.

의료 영업직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단순했다. 군 휴학 후 1년간 일한 휴대폰 판매점에서 성실함과 신뢰로 고객과 사장에게 인정받았다. 물론 돈도 그때 내 나이, 물가에 비해서도 많이 받았다. 무엇보다 노력과 실적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이 나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수많은 의료기기 회사가 있고, 병원에는 다양한 진료부서가 있다. 그 중 내가 지금 근무하는 회사에 지원한 가장 큰 이유는 ‘방사선사 우대’라는 여섯 글자 때문이었다. 현재 영상의학과와 순환기내과 Intervention 시술에 사용되는 전반적인 의료 소모품 영업 및 담당병원 고객 방문관리 업무를 맡고 있고, 이 일을 한 지도 어느덧 8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있다.

처음 병원에서 의료기기 회사 영업직을 고민하던 때, 모든 것이 궁금하고 생소했지만 현업에 종사하는 선배님이나 조언을 구할 곳이 마땅치 않아 혼자서 끙끙 앓았던 기억이 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의료기기 영업직, 그 중에서도 intervention 의료 소모품 영업을 고민하는 후배님들이 계신다면 이 글이 조금이나마 궁금증을 푸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모든 회사가 그렇진 않겠지만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담당 병원 및 고객 관리가 주 업무이기 때문에 정시 출근, 정시 퇴근,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하는 요즘 MZ 세대들이 갈망하는 워라벨(Work-life balance)의 삶을 지향한다면 이쪽 업계와는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또한 담당 병원이 정해지면 담당자가 그 회사가 되기 때문에 본인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매출 분석, 회의 자료 작성, 시장 동향 파악, 재고 관리 등 회사 내적인 업무도 많다. 보통 남녀 성비가 균형 잡힌 병원에 비해 특히 영업 회사는 남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 분위기가 병원에 비해 조금 어둡고, 수직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여느 영업직이 그렇듯 매출, 실적에 대한 압박을 피할 수 없다. 그 흔한 문장처럼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 그래야 버틸 수 있다. 그 외에도 여기에 글로는 쓸 수 없는 힘든 점들과 고충도 많다.

하지만 그 불만과 단점들을 덮을 만한 장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먼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영업이 아닌, 담당 병원 내에 특정 진료과 의사나 방사선사, 간호사를 상대로 영업하기 때문에 타 영업직에 비해 신사적이고 인간적인 고객들이 많아 거기서 일에 보람이나 재미를 찾기가 쉽다는 것이다. 또한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그날에 날씨를 느끼고 하루가 가는 걸 느끼고 계절이 바뀌는 걸 몸소 느낄 수 있다. 하루가 답답하지 않다.

제일 큰 보상은
본인이 노력 후 얻는
성취감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 그 경험이라는 것이 너무 광범위해서 무언가로 단정지을 순 없지만 Intervention 학회 뿐만 아니라 관련된 여러 국내외 학회에 참석할 때 전국의 대도시나 유명 도시를 가서 그 지역마다 가지는 특산물을 먹어보거나, 유명 관광지 등을 경험 할 수 있다. 또한 자주 나가는 건 아니지만 해외 학회에 가기도 한다. 필자의 경우 뉴질랜드, 스페인, 싱가폴, 일본 등 담당 병원 고객, 혹은 회사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 나가는 경우도 있다.

회사에서 영업사원은 이것저것 경험을 다양하게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급 음식이나, 주류 같은 경우도 접할 기회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과 기회도 당사자가 그것을 즐기지 못하고 일로만 받아들인다면 이것만큼 피곤한 직업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어떠한 장점보다 의료 영업직의 가장 큰 장점은 이 글의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내 노력과 실적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금전적인 보상이 될 수도 있고, 진급이 될 수도 있고 차량 업그레이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제일 큰 보상은 본인이 노력 후 얻는 성취감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있었던 1년이란 시간 동안은 방사선사로서 자긍심이 있었지만 지금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는 잊고 살았다. 매일 방사선사 선, 후배님들을 대하면서도 내가 방사선사라는 걸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이렇게 글을 쓰는 기회 또한 나에게는 정말 큰 자산이 될 거라 생각한다. 이런 값진 기회를 주고 나 자신이 방사선사라는 자긍심을 일깨워 주신 여러 선, 후배 방사선사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 방사선사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