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희 선생님,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1958년생, 나이 많은 직장인 정연희입니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가난한 집에서 4녀 중 맏딸로 태어나 일찍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가난했지만 저희 어머니께서는 공부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셨죠. 다른 동생들은 다 대학을 졸업했는데 저만 다니지 못한 것을 저도, 어머니께서도 늘 마음에 담고 살았죠. 그래서 언젠가는 어머니와 저의 염원인 대학을 졸업하리라는 꿈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예순이 지나 대학생이 되셨지요.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지만 뒤늦게 대구보건대학교 방사선과에 진학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40대 후반쯤 제부(둘째 동생의 남편)가 김천에서 개원을 했어요. 원무과 일을 하면서 간호조무사 자격증도 취득하며 열심히 근무했습니다. 하지만 뛰어넘지 못할 산이 있었고, 의료전문인과의 차별로 인한 상처가 대학 진학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예전부터 저에게 간호학과를 추천하셨지만 저는 좀 더 오래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평생 이루고 싶었던 대학공부도 할 겸 방사선과를 선택했습니다.

방사선사 면허증을 받아보는 순간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대학 진학 후 나이 때문에 어렵고, 힘들었던 점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떠셨나요?

학과 면접 보던 날, 안내하시던 교수님께서 대기 중인 저를 보고 “어머님, 보호자는 들어올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 복도에서 학생들을 마주치면 “안녕하세요~ 교수님” 이런 인사도 종종 받았고요. 그래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없던 2019년 여름에도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학교까지 왕복 두 시간 거리를 오가며 야간 수업을 들을 때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었어요. 기억력, 집중력도 떨어져서 가장 힘들었습니다. 특히 시험 기간에는 지옥을 넘나드는 기분이었죠. 하하… 하지만 저의 제부인 원장님께서 오전 근무만 하도록 편의를 봐주셨기 때문에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고 중간중간 포기하고 싶어서 정재은 주임 교수님을 찾을 때마다 졸업을 하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해주셨습니다. 특히, 국가고시 45일 전부터는 아예 교수님 연구실 한쪽에 자리를 만들어 공부를 도와주셨어요. 주변에서 열정적으로 도와주신 덕분에 제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2021년 국가고시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방사선사 면허 취득 이후 어떤 점이 변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합격 후 처음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많은 인터뷰 요청과 축하를 받으면서 조금씩 실감이 났고, 무엇보다 방사선사 면허증을 받아보는 순간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동료들도 저를 보면서 동기부여를 받았다고 합니다.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제부인 원장님과 일하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게 되어, 여러 곳에 이력서를 제출했습니다.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하고 싶은데 나이라는 현실에 제약을 받네요. 하지만 끝까지 도전해 보겠습니다. 모르면 더 열심히 배워가면서 하겠습니다.

대한방사선사협회 회원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방사선사 공부를 하기 전에는 잘 몰랐지만 공부를 해보니 우리 방사선사 선생님들 정말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넘쳐나는 높은 학벌 속에서도 취업률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습니다. 방사선사는 진단 및 치료 외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자격증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의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검사 기계들도 더 좋아질 것이고 방사선사 선생님들의 학술적인 기술이 더 필요해질 것입니다. 의학계에 꼭 필요한 전문적인 방사선사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