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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건중(제15대, 16대 대한방사선사협회장)

뢴트겐이 엑스선을 처음으로 발견한 날은 1895년 11월 8일입니다. 실험 중 바륨 백금 시안화물(BaPt(CN)₄)이 정체불명의 선에 의해 빛나는 현상을 목격한 순간을 엑스선이 처음 발견된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후 뢴트겐은 약 한 달 반 동안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실험을 반복하며 관찰과 기록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리고 1895년 12월 22일, 그는 부인의 손을 촬영해 엑스선의 존재를 입증합니다.

이 영상에는 금속 반지와 뼈가 선명하게 보였고, 세계 최초의 인체 엑스선 사진으로 기록되었습니다(그림 1).

그림1. 뢴트겐이 1895년 11월 8일 엑스선을 발견한 지 한 달 반 후인 12월 22일 부인의 손을 처음으로 촬영한 영상으로 최초의 엑스선 사진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시대’의 서막을 알렸으며, 당시 학계와 언론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영상은 무엇에 기록하였을까요? 이것이 오늘 설명할 소재입니다.
뢴트겐이 촬영한 세계 최초의 인체 엑스선 사진은 유리 원판 상태로 독일 뢴트겐 박물관에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제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이 유리 원판의 엑스선 영상은 복제품으로 의료 역사 전시 등에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기록 매체는 투명 유리판 위에 감광 유제를 도포한 ‘유리 건판(dry plate)’이 사용되었습니다. 유리 건판은 1871년에 등장하여 ‘습식 건판(wet plate)’의 불편함을 해소하며 널리 쓰이게 되었지만, 크고 무겁고 잘 깨지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당시 야전에서 발생하는 충격, 진동, 운반 과정에서 건판이 파손되는 일이 빈번해 부상병의 영상 손실과 치료 지연이 많았습니다.

유리 건판에서 필름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1914년, 유리건판을 대체하기 위해 질산섬유소(nitrocellulose) 필름이 개발됩니다. 이 필름은 유연하고 가벼워 휴대와 촬영이 용이해 특히 전쟁터에서는 깨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장점이 되었습니다.
야전에서 휴대가 간편해 촬영 편의성을 크게 높여 각광받았지만, 높은 인화성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질산섬유소는 인화성이 매우 높은 물질로, 건조하거나 고온의 조건에서 자연 발화가 발생하고, 필름 자체에 불이 붙으면 끄기도 힘들었습니다.
실제로 필름 저장고 화재가 발생한 탓에 귀중한 영상이 소실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안전 필름의 등장
1924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 셀룰로오스 트리아세테이트(cellulose triacetate) 기반의 필름 지지체가 등장합니다. 화재 위험성, 필름의 변형 등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새로운 필름 박스에 ‘안전 필름(safety film)’이라는 문구를 인쇄까지 했습니다(그림 2).

그림2. 예전 엑스선 필름 박스에 씌여진 Safety Film(안전 필름) 표식

이는 단지 마케팅 차원이 아닌 실제 화재로부터 안전한 전환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여러 필름 회사들은 필름 박스에 ‘안전 필름’이라는 문구를 인쇄해, 화재에 취약했던 이전의 필름과 차별화를 명확히 하려 했습니다.
본인도 열심히 일하던 시절에 필름 박스에 인쇄된 ‘안전 필름’이라는 글자를 보며 ‘뭐가 안전하다는 걸까?’ 하고 궁금해하던 기억이 납니다.

폴리에스터 지지체
​그러다 1960년대 이후에는 새로운 지지체인 폴리에스터(polyester)가 개발되면서 또 한 번의 발전이 이뤄졌습니다. 이 필름 지지체는 물리적 강도가 탁월해서, 현상 과정이나 장기 보관 시 변형이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말림, 수축, 갈라짐 같은 문제도 발생하지 않아 의료 영상 기록 매체의 신뢰성을 크게 높였습니다. 이 시기는 아날로그 필름 기반 의료 영상의 완성기로 평가됩니다.

디지털 영상화로 전환
​1990년대 후반부터는 의료 영상 기록 매체에 디지털 전환이 본격화됩니다. 필름 대신 PACS(Picture Archiving and Communication System) 기반의 디지털 영상 저장 및 조회 시스템이 도입되며, 기존 아날로그 필름 방식이 자취를 감춰 버리고 의료진은 필름 대신 모니터로 영상을 확인하게 됩니다.
비록 아날로그 필름을 볼 일은 거의 없게 되었지만, 디지털 시스템과 연동한 건식 필름(dry film)은 여전히 일부 병원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습판과 건판의 다른 점은?
습판(wet plate)은 한국어 용어로는 습식 건판 또는 습판이라고 합니다(본 설명에서는 혼선을 피하기 위해 습판이라고 함). 건판(dry plate)의 한국어 용어로 건식 건판 또는 건판이라고 합니다.
습판과 건판의 다른 점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851년경에 출현한 습판은 취급자가 암실에서 콜로디온을 유리판에 직접 도포하고, 뒤이어 질산은 용액(점성)을 도포해 마르기 전에 바로 촬영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습니다.
질산은의 감광성이 빠르게 소실되기 때문에 즉시 노출하는 것이 필수였고 콜로디온과 직산은을 도포하기 위한 암실도 필수적으로 갖춰야 했습니다.
반면, 1870년대에 등장한 건판은 공장에서 미리 유제를 유리에 도포하여, 건조된 상태에서도 감광성이 유지되면서부터 자유로운 시간에 촬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촬영이 훨씬 간편해져 사진 기술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뢴트겐도 당시 사진 기술의 발전으로 유리 건판을 여러 장 실험실에 갖추고 있어 신속히 엑스선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으니 유리 건판도 엑스선 발견에 큰 몫을 담당하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