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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진학(충북대학교병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침묵에 관해 이야기하는 강은교 시인의 「사랑법」이라는 제목을 가진 시의 일부이다. 복잡한 일상에서 탈출하여 진정으로 나를 돌아보는 침묵의 시간이자 철학의 시간, 그것을 찾아보기 위해 떠나는 올해 두 번째 스쿠버 다이빙 일정이었다. 이번 투어의 종착지는 환도상어로 유명한 필리핀 말라파스쿠아였다.

청주에서 인천까지 버스로 2시간 30분, 다시 필리핀까지 비행기로 4시간, 세부 막탄 공항에 내려서 육로로 3시간 그러고 나서도 또다시 배를 타고 30분 정도 들어가면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인 말라파스쿠아에 도착한다.

말라파스쿠아는 스쿠버 다이버들에게는 이미 많이 알려진 유명한 장소이지만 이런 취미가 없는 이들에게는 약간은 생소한 지명이다. 처음 듣는 사람들은 동물들의 천국을 다룬 애니메이션 영화 「마다가스카르」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긴 이동 시간을 감수하고서 이곳까지 스쿠버 투어를 오는 가장 큰 이유는 환도상어 때문인데, 보통의 상어 이미지와는 다르게 사람을 공격하지 않고 물고기를 주로 먹으며 특이하게 긴 약 5m에 달하는 꼬리를 흔들면서 유영한다.

긴꼬리를 이용하여 먹잇감을 기절시켜 잡아먹는다고 알려져 있는 환도상어는 짧고 뭉툭한 입과 크고 동그란 눈, 소년의 표정을 가진 ‘귀여운’ 심해 어종이다. 대부분의 스쿠버 다이빙이 그렇듯 목적하는 물고기와 바닷속의 아찔한 풍경을 마주하면 고생하며 달려온 피곤함이 싹 사라진다. 어쩌면 이런 것이 심해의 깊이만큼 빠져들게 만드는 스쿠버 다이빙의 매력일 것이다. 필자 역시도 환도상어를 마주하고 인사를 나누고 나니 10시간 이상 긴 거리를 이동하며 쌓인 피로감이 스르륵 사라지는 것 같았다.

요즘 들어 스쿠버 다이빙 취미를 즐겨 하고 있는데, 물 중간에 중성 부력을 잡고 둥둥 떠서 가는 것도 좋고 내 숨소리만 들리는 물속의 그 적막함도 좋다. 그리고 엄청나게 다양한 생물군을 구경하는 것도 즐겁다. 작은 생물을 접사 카메라로 찍는 다이빙 활동을 마크로 다이빙이라고 하는데 포식자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각종 위장술을 쓰는 생물들을 찾고 관찰하는 재미가 상당하다.

필자에게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것 중에 스쿠버 여행만한 게 없다. 배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 스쿠버라는 취미를 알고 계신 분들도 있겠지만, 잘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을 거라 생각을 한다.

간단히 말하면 스쿠버 다이빙이란 공기통을 매고 바닷속에 들어가서 해양 사파리를 즐기는 것이다. 이 간단한 행위를 위해서 여러 가지 이론과 기술들을 습득해야 하고 시간과 비용도 꽤 들어 간다. 필자는 어쩌다 보니 강사 레벨의 자격에 꽤 많은 다이빙 로그수를 가지게 되었다.

이 스포츠에 관심이 있는 분은 꼭 한번 도전해 보기를 추천한다. 물론 잘 안 맞는 분도 계시겠지만, 잘 맞는 분이라면 ‘왜 이걸 이제야 배웠지?’라는 생각이 드실 것이다.

필리핀 말라파스쿠아에서 만난 바닷속 친구들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친다.

Tips
말라파스쿠아섬Malapascua Island
서태평양에 위치한 필리핀은 7641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풍부한 생물다양성 지역으로 열대우림과 바다, 호수 그리고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지형 등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생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세부 북부에 위치한 말라파스쿠아섬은 ‘불행한 크리스마스’라는 뜻을 가졌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말라파스쿠아섬에 처음 당도한 것이 축복으로 가득해야 하는 날인 크리스마스 즈음이어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름과는 다르게 이곳의 바닷속은 행복하고 풍요로워 전 세계에서 다이버가 몰려들고 있다.